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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새롭게

너희가 웃으면 엄마도 행복해

by 케롤린 2021. 5. 4.

내가 어린시절 나고 자란 곳은 예전엔 지도에도 잘 표시되지 않던 곳이다.

저녁뉴스에는 항상 '영동 산간지방'으로 표현되던 곳.

 

큰 도시에 별로 나가본 일이 없어 내가 '우물 안 개구리'인지 조차도 몰랐던 어린시절의 나.

매일 마주하는 산과 바다,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경치에 감사함을 잘 느끼지는 못했지만 사랑했던것은 분명하다.

매일 하교길에 바다를 내려다보는 길을 걸으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당시에 느꼈던 고단함을 넓은 바다를 보며 이겨냈던 것 같다. 마음이 답답할 땐 종종 바다로 나섰던 기억이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보니, 흙과 바다와 맑은 공기가 있는 시골이 참으로 감사하게 느껴졌다.

깨닫지 못한 축복이었다.

첫째를 낳았을 때 친정에 가면 아기띠를 메고 바닷가와 그 옆 솔숲 산책로를 거닐었고, 아이의 늦된 걸음마도 그곳에서 떼었다. 둘째를 낳고나서는 기회만 되면 아이들과 함께 바다로 나섰다. 추운 겨울만 빼고 넓은 바닷가의 모래사장은 아이들에게 훌륭한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코로나로 인해 할머니댁을 방문하기가 조심스러워진 요즘, 아이들이 그동안 시골방문을 하지 못해 속병이 들었었나보다.

학교 단기방학을 맞아 이곳저곳 짧은 여행 계획을 말하는 친구들 앞에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던 내 아이는, 강원도 할머니댁에 가자는 나의 말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정말?'이라고 되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바빠 때를 놓치는 바람에 고사리들이 너무 활짝 피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할머니가 가르쳐준대로 제법 먹을만한 고사리를 잘도 찾아냈다.

 

"엄마, 나는 나뭇가지처럼 생긴 나물이 맛있더라." 했던 둘째의 말을 전하자 친정 엄마는 두고두고 그 말이 생각나서 자꾸 웃음이 났다고 했다. 

녀석은 고사리가 있는 산 밑으로 걸어가는 내내 아마존 정글도 이럴것이라고 조잘조잘 상상을 했다.

좀 더 크면 '아마존의 눈물' 다큐멘터리를 보여줘야겠다.

 

 

 

 

따서 모아드니 고사리가 꽤나 예쁘다.

 

 

 

너도 참 예쁘다, 내 딸♡

 

 

 

 

쌀쌀한 오전 기온덕에 두텁게 입었던 옷을 벗고 본격적으로 나물 채취에 들어간다. 

작년엔 참나물이 많았는데 올해는 참나물은 없고 취나물이 많이 났단다.

취나물이 몸엔 더 좋다며 부지런히 취나물을 찾아 엎드린다.

나는 어릴적에 할머니들과 저런 추억을 나누지 못했는데, 내 딸은 할머니와 저런 추억을, 이런 사진을 남길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나물 채취가 재미없어진 둘째는 전날 내린 비로인해 진흙길이 되어버린 곳으로 나를 잡아 이끈다.

'엄마~!! 내가 늪에 빠지고 있어~~~~ 도와줘~~~~~~!!'

아마존 놀이란다.

녀석은 열심히 빠지고 나는 열심히 구해준다.

 

 

 

 

공기가 맑았고 하늘에 구름한 점 없이 화창한 날이었다.

아이들이 계속 이런곳에만 머물렀으면 싶어 가슴이 시렸다.

 

 

잠깐 간식을 먹은 후, 본격 밭일 시작이다.

옥수수 모종을 심고 잡초도 캔다.

 

 

햇볕좀 많이 쐬라고 일부러 모자를 안챙겼는데

뒤늦게 사진으로 보니 좀 미안하네. 그래도 비타민D 많이 생겼을거야.

 

 

 

 

둘째가 시력이 안좋아 안경을 쓰게 된것이 걱정되었던 나의 엄마는, 나의 아들을 위해 블루베리 묘목을 몇그루 심었다.

나무에 꽃망울이 열렸다. 너무 귀엽고, 작고 소중하다. 때가 되면 열매를 많이 많이 맺어 주었으면 좋겠다.

 

 

 

 

하루는 흙과 함께 놀았으니, 

다음날엔 바다로 와야지.

평일 오전, 작은 마을의 앞바다에는 사람이 없다. 마스크를 벗어도 전혀 눈치보이지 않는, 우리가 전세냈었던 바다.

 

 

 

너희들이 즐거우니 나도 즐거워.

너희들이 웃으니 엄마도 행복해.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며 행복한데 한편으론 가슴이 아프다.

매일매일 이렇게 즐겁게 해주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잘 안된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남편과 나의 끝나지 않을 대화가 계속 이어진다.

우리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아이들을 이렇게 행복하게 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은걸까.

 

 

 

 

 

 

 

 

 

산과 바다가 있어서 행복했던 날들.

아이들을 건강하고 즐겁게 만들어줄 수 있어 더욱더 행복했던 날들.

 

나는 한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할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한 길이 무얼까 계속 찾았더랬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깨닫게 된 것, 내가 아무리 나의 행복을 탐색해도 만족하지 못했던 이유.

엄마가 행복하더라도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와 아이들 사이의 균형을 찾지 못하고 그저 내 웃음이 곧 아이들의 웃음이려니 착각했었다.

내가 웃으면 아이들은 웃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웃으면 나는 무조건 웃게 되어있었는데 그걸 놓친 채 계속 나는 나의 자아만 들여다보려 했었다.

 

잠시 나만의 것들을 내려놓고 아이들의 말과 표정에 집중하던 요즘이었다.

그제서야 아이들의 웃음이 더욱 내 가슴 깊숙이 파고들고 나도 그동안 부족하다 느꼈던 내 안의 따스한 행복이 스멀스멀 피어오름을 느낀다.

 

내가 너희들의 엄마라서 행복해.

너희들의 웃음이 엄마의 행복이야.

우리 또 산에서 바다에서 건강하게, 즐겁게 웃으며 그렇게 시간을 함께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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