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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새롭게

엄마의 삶은 위로받고 있는가

by 케롤린 2020. 11. 27.

6살 둘째아이의 종알거림을 하루 종일 듣게된지 겨우 이틀째인데,

벌써부터 멘탈이 흔들리고 있다.

저녁식사 이후로는 더욱 참을 수 없어

하루에 두 권이나 읽어치운 육아서는 소용도 없게 되어버린다.

 

9시. 10시. 10시 반.

이제 그만 잘 준비해라~

이제 얼른 자라.

좋은말로 할때 빨리 자라!!

 

11시가 다 되어가는 이제서야 아이들이 눈치껏 자리에 눕는다.

이제 곧 엄마 입에서 쌍욕이 나올거라는걸 예상하는게지.

 

이 시간,

무엇으로 나의 짜증난 심사를 달래줄 것인가.

디카페인 커피는 똑 떨어졌고,

남편하고의 술 한잔은 오늘 전혀 내키질 않는다.

책을 읽자니 부글거리는 속에 치여 어떤 책을 골라야할지 속이 더 복잡하다.

이 와중에 저녀석들은 뭐가 그리 소곤소곤 즐거운지.

이렇게 혼자 마음을 뱉어놓는 일기쓰기로 위로를 시도해본다.

 

오늘은 나의 엄마에게도 위로가 필요한 날이었다.

왜 엄마의 남편은 나이 일흔을 몇년 남기지 않은 이 순간에도

어쩜 그렇게 생각이 짧고 철이 없는지.

아버지가 너무 미워서 그 미움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내 아버지이지만 존경할만한 구석이라고는 단 한톨도 없다는게 너무 원망스러워서,

그 유전자의 절반이 나에게도 흐르고 있다는게 너무 짜증스러워서

고해성사 하러 갔던 날, 신부님 앞에서 펑펑 울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때가 벌써 8년전인데

지금도 상황은 크게 나아진것이 없다.

그저 미워하는 내 마음을 잘 어루만지고 달래며 시간을 지내왔을뿐,

간간히 돌이켜보는 엄마의 삶의 피로함은 전혀 나아진것이 없는 것 같다.

 

엄마의 푸념에 내가 더 대노하여 속사포처럼 분노를 표현하자,

오히려 엄마가 날 달래준다.

그렇다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는 마.

엄마가 오히려 내게 하소연을 괜히 했나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한 것 같아 아차 싶다.

 

엄마로 살아온지 곧 40년을 눈 앞에 둔 우리 엄마는

요즘 무엇으로 삶의 피로함을 위로 받고 사는지

난 물어보지 못했다.

아무것도 없을까봐.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겨우 사소 한 것 하나로 위로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을때

오히려 그 초라함 때문에 더 안쓰러워질까봐 물을수가 없다.

 

엄마 시대를 살아온 엄마들은 다 그렇다고

그 시대는 다 그렇게 먹고 살기 바빠서 자기 마음 챙기고 살 시간이 어디있었냐고 말들하지만

그래도 저렇게까지 속썩이는 남편을 다 만나지는 않았을거다.

 

엄마에게 왜 그렇게 살았냐고,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다.

다 너희들 때문이지 뭘.

아들들이었다면 그냥 훌쩍 떠날까도 싶었는데

너희가 딸들이어서, 험한 세상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참았지 뭘.

 

결혼 전에는 반 정도밖에 이해되지 않았던 저 말이

엄마가 된 지금은 너무 절절하게 이해가 되어서 더욱 마음 아프다.

 

황혼이혼은 또 어디 쉬운일인가.

그것도 다 경제적 뒷받침이 되어야하는 일이지.

로또나 당첨되어서 울엄마 속 편하게 황혼이혼 시키는게 내 소원리스트로 하나 늘어났다.

 

결혼에 이어지는 출산, 그리하여 탄생하는 가정.

이렇게 한 줄 글로 이어지는 과정이 사실 엄청나게 험난하고 긴 여정이라는 것을

서른이 다 된 나이에 결혼하는 나도 몰랐었는데

20대 어린나이에 결혼하는 엄마도 알고있었을리 없다.

그러니

지나간 일에 후회를 남기고 한탄하느니

지금의 삶에 위로를 받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리라.

 

나도 힘을 낼 테니,

엄마도 더 힘내주시기를.

이 세상엔 위로가 되고 즐거움이 될 만한 것들이 충분히 많으니

그것들을 엄마가 더 빨리 더 많이 깨달을 수 있기를.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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