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시간.
남편과 회 한접시를 사서 소주를 곁들인다.
뉴스를 보면서.
온갖 비리와 폭력으로 얼룩진 뉴스의 내용들은
자연스레 남편과 나를 토론의 장으로 이끈다.
대화의 끝엔 언제나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즈음엔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을것인가 ㅡ가 제일 큰 화두로 떠오른다.
더 나은 세상이 올까.
좋은 세상의 기준이 무엇일까.
누군가는 집값이 오른것이 좋을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그 오른 집값이 상실감과 박탈감으로 이어질텐데.
누군가는 신도시 건설 예정지인 땅을 미리 살수 있어서 좋았을테고, 누군가는 그런 비리들을 보며 분노할텐데.
자본주의 시대는 저물지 않을것이고 양극화는 더 심해질텐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가르쳐야할 것인가.
현실적 사고를 지닌 남편과 이상적 사고를 지닌 나는 의견이 조금씩 달라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인간의 기본 성향에 대해 남편은 성악설, 나는 성선설을 지지하는 점에서도 다르다.
고로, 남편은 아이들을 좀 약게 살게끔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고
나는 그래도 정의롭게 삶을 살라고 가르쳐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편으론 두렵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어떤곳이될지 알 수 없으니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으려면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
자주 흔들리고 혼란스럽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에는
지금의 너희들이 너무 예쁘다.
세 살, 네 살 너희들의 사진속 모습이 너무 예뻐서
가만히 눈을 감고 그때의 상황과 공기르 떠올려보려해도
자꾸만 손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사라져가는 기억들이 아쉽기만하다.
그렇지만 또,
지금의 예쁜 너희들의 모습만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계획과 걱정을 아주 놓아버릴수도 없다.
엄마는 그저 믿을수밖에 없을것 같기도 하다.
지금 엄마 아빠가 주는 사랑을 무럭무럭 먹고 씩씩하게 자라서
어떠한 미래가 오더라도 너끈히 그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되기를, 믿어주는 수 밖에.
내 손에 앙증맞게 쥐어지던 작은 손이
자꾸만 커져가는게 아쉽다.
엄마의 품 안에서 머무는 시간들이 자꾸만 줄어드는 것이 아쉽다.
아이들을 낳지 않아다면 몰랐을
엄마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과 시간들이
생에 단 한번뿐일 이 시간들이 참으로 귀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내일은 오늘이되고 오늘은 어제가 될 것이니
나는 오늘 한 번 더 너희들을 안아주고
내일도 그 다음날도 많이 안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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