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달여간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책은 <죄와 벌>.
그 압도적 서사에 체력이 다해 이어서 읽을 책은 좀 가벼운 것으로 선택했다.
거의 십여년 넘게 손에 들지 않았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그의 책 <고양이>를 후딱 읽고 이번엔 <죽음>을 읽어보았다.
읽고 난 소감은.. 글쎄 뭐랄까.
작가의 여전한 상상력에는 감탄하지만 나에게는 딱 거기까지.
감탄을 넘어선 감동까지는 얻지 못한다.
주인공의 죽음과 관련된 범죄 스릴러인줄 알았는데 후반부에 가면서 갑자기 장르가 변경되어 당황스러웠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는 알겠으나 후반부에 갑자기 맥이 풀려버린것은 어쩔 수 없다.
영매인 루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이렇게 기도한다.
"살아 있음에 감사합니다.
육신을 가진 것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존재의 행운을 누릴 수 있는 만큼 이에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죽은 후의 삶(?)이 어떤것인지 잘 알기에 할 수 있는 그녀만의 기도였다.
생활이 지겹다고, 행복하지 않다고 종종 느끼는 요즘의 나에게 신선한 기도였다.
나는 얼마나 생의 감사함을 잊고 살고 있었나.
피곤하고 귀찮다고 느끼는 엄마로서의 삶을 어떤 누군가는 간절히 바라는 일상일 수 있고, 울퉁불퉁 튀어나온 군살과 거친 피부를 가진 몸이라도 질병을 앓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그마저도 감사한 몸일수도 있을 것이다.
쉽진 않겠지만, 나도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저런 감사의 기도를 잊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
주인공 가브리엘에게 당신은 뭘 배웠느냐고 루쉬가 묻는다.
가브리엘이 대답한다.
“첫째, 인간의 삶은 짧기 때문에 매 순간을 자신에게 이롭게 쓸 필요가 있다.
둘째,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남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결국 선택은 우리 스스로 하는 것이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우리가 지는 것이다.
셋째,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는 도리어 우리를 완성시킨다. 실패할 때마다 뭔가를 배우기 때문이다.
넷째. 다른 사람에게 우리를 대신 사랑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다섯째. 만물은 변화하고 움직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억지로 잡아 두거나 움직임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
여섯째. 지금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려 하기보다 지금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은 유일무이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완벽하다. 비교하지 말고 오직 이 삶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애써야 한다.”
많은 철학서들이 하고 있는 공통의 이야기가 이 소설에서도 나온다.
철학서를 지루해하는 독자들을 위해 그의 이야기를 빌려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책의 중반, 문학의 정의에 대해 논쟁하는 부분도 이야기의 흐름을 이끈다.
‘문체’를 중심으로 하는 고전 문학과 ‘줄거리’를 중심으로 하는 장르 문학.
어떤 문학이든 그 가치를 어느 누가 값지고 덜 값지다 평가할 수 있는가.
베르나르는 주인공 가브리엘의 입을 통해 문학의 가치는 오로지 ‘시간’이 평가해준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동감한다. 문학은 읽는 독자들에게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랑받는지 아닌지에 의해 그 가치가 판명나는 것이 아닐까. ‘문체’의 느낌을 좋아하는 독자가 있고 ‘줄거리’의 흥미와 재미를 중요시하는 독자가 있다. 독자들에게 좋은 문학 나쁜 문학을 나누어 알려주고 나쁜 문학을 걸러줄 권리가 평론가들에겐 없지 않은가. 누가 그들에게 권리를 주는가?
그런 의미로 앞으로 더욱 더 책을 고를 때에는 평점이나 리뷰, 서평, 출판사의 홍보글을 읽어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책을 읽는 ‘나’의 생각과 느낌이 내겐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
인문학 서적을 읽으면서 종종 접했던 글들은 ‘삶과 죽음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였다.
태어난 모든 것은 소멸한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 죽음이 내일이 될지 몇 년 후가 될지, 몇십년 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것에 경의와 감사를 표현하며, 내 가까이에서 행복을 누리는 ‘과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도 이 책이 주는 감동이 크지 않다고 여겼는데 그건 아니었나보다.
다음에 또 베르나르의 책을 읽어볼까 말까 했던 고민을 끝내야겠다.
다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읽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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