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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새롭게

2021년의 첫번째 일기

by 케롤린 2021. 1. 6.

예전엔 꼭 그 해의 마지막날 밤이면, 티비 앞에 가족들과 둘러앉아

각 방송사에서 하는 대상 프로그램을 보다가

자정 12시가 되면 제야의 종 치는 모습을 보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기분을 느끼곤했다.

 

그랬던 기억이 어느 해가 마지막이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올해는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것도 실감이 나질 않으며 ㅡ 딱히 실감하고 싶지도 않고,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조차도 없었으며

그저 이 오랫동안 이어지는 이상한 날들이 하루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엄마는 일년 중에 어느 날이 제일 행복해?" 묻는 딸에게

"너희가 태어난 날. 다현이 현준이 생일." 이라고 영혼없이 대답했었다.

"에휴. 우리 생일 돌아오려면 한참 멀었는데, 그럼 엄마 그때나 되서야 웃어주는거야?" 라고 했던 아이의 말이 며칠씩이나 내 마음을 콕콕 찔러서

아이들보다 더 유치하고 철부지 같았던 나를 반성했다.

 

전보다 일찍 잠들고 조금씩 일찍 일어났다.

아이가 학교갈때는 새벽에 일어나 국도 끓이고, 고기도 굽고 했었는데..

지금은 산발머리로 사각사각 사과를 깎고, 빵과 우유를 데워주는게 전부다. 

귀찮아서 자꾸 미루던 샤워시간도 앞당긴다. 일찍 씻는만큼 정신이 상쾌해지는 시간도 앞당겨진다.

매일 시켜먹던 반찬도 있지만, 브로콜리를 데치고 토마토도 썬다.

모아놓고 한꺼번에 식기세척기에 집어넣던 그릇은 괜히 한번 손설거지도 한다.

책도 안읽히고, 폰을 들여다보는 일도 지겨워서 멍하니 누워있다보면 낮잠에 빠지기 일쑤였는데

아이들과 빨강머리앤 한편 같이 보고, 껌도 우물우물 씹어가며 음악도 찾아듣는다.

그래. 음악을 들은지가 너무 오래됐었다.

 

늘 거실에 있다가 방으로 피신해서 음악도 듣고 책도 보고 하자니

딸이 따라 들어온다.

왜냐고 묻는 나에게 딸이 대답한다. 

"엄마가 계속 보고 싶어서."

못말린다 정말. 내가 졌다.

이런 아이에게 어떻게 감히 내 사랑이 더 크다고 얘기했었을까.

 

지치지 않기를. 

자꾸 내 게으름에 지지 않기를.

 

커다란 목표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지금은 그저 맡은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기를.

아이들을 잘 돌보는 일,

이 아이들을 한껏 더 사랑하는 일.

사랑을 표현함에 있어 아이들에게 지지 않기를.

 

이렇게 올해의 계획이 하나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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