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나에게 눈치보면서 말을 할때에는 초성글자를 사용해서 쪽지를 쓰곤 한다.
'엄마, ㄱㅅ ㅁㅇㄷ ㄷㅇ?'
'엄마, ㄱㅇ ㅎㄷㄷㅇ?'
간식이 먹고 싶고, 게임이 하고 싶은데 엄마 눈치를 살필때에는 꼭 저렇게 쪽지를 써서 손에 쥐어주고는 내 얼굴을 쳐다보며 기다린다. 처음엔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으나 이젠 우리 가족의 문화(?) 같은것이 되어버렸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면서 말을 건네고 싶을땐 저렇게 초성글자를 써서 남겨놓는..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이 책, 『내 마음 ㅅㅅㅎ』(김지영 그림책, 사계절)은 마치 내 아이의 들여다보듯 표지의 주인공 얼굴을 들여다보게 만들며 'ㅅㅅㅎ'의 정체가 무엇인지 상상하게했다.
" 'ㅅㅅㅎ'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단어들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평범한 하루에서 은은하게 반짝이는 어린이의 감정에
빠져들게 되고 마침내 읽고 있는 나 자신의 감정에 닿게 된다.
짜임새 있는 이야기와 간결하고도 따뜻한 시각화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우리가 무심히 지나친 일상 속 숨은 감정을 깨워
자기 언어로 끌어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ㅡ 서현, 송미경, 이지은(제1회 사계절그림책상 심사위원)
"이상해. 갑자기 다 너무 시시해."
"뭘 해도 마음이 싱숭해."
누군가에게나 그런 순간이 가끔씩 오지 않을까.
내가 지금껏 해오던 많은 일들이 갑자기 시시하게 느껴지고, 의미 없게 느껴지는 그런 순간.
엄마로 살면서 그런 순간은 더 종종 찾아왔던것 같다. 좋은 엄마의 모습을 보이려 열심히 노력했으나 알아 주는 이는 아무도 없고, 아이들도 제 멋대로인 그런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는 삶의 시시함, 무의미함.
뭘 해도 손에 잡히는 일이 없고 즐겁지가 않고 마음은 싱숭생숭.
요즘 내 마음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는것 같아 약간의 울컥함(?)을 느끼며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ㅅㅅㅎ'로 이어지는 마음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새삼 놀란다.
섭섭하고, 속상하고, 소심하고 심심한 그런 마음의 상태들.
그림을 보며 내 모습을 들킨것 같아 웃음도 났다.
섭섭해서 화가났을때 갑자기 변한 주인공의 모습.
나도 아이들에게 화가날땐 마녀로 변하는 엄만데...
그러다 책 속 주인공의 마음에 새로운 그림이 그려진다.
'소소하'지만, '신선한' '상상'들을 통해.
그래도 내 마음을 바꾸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잘 상상이 안될 땐
돌려보고, 더해본다.
와,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이란 이런것이구나 감탄한 순간이다.
그리하여 결국엔,
"내 마음도 다시 쌩쌩해"
간단한 세 마디 단어들로 나의 마음을 읽어본다.
시시하고 싱숭하고 속상하고 섭섭했던 내 마음들.
그리고 또 다시 간단한 세 마디 단어들로 나의 마음을 일으켜본다.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 것들로 마음의 에너지를 꽉 채워본다.
'ㅅㅅㅎ'로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궁금해하며 자연스레 책장을 넘기다보면
어느새 나의 마음이 따라가게 되고,
작가의 기발함에 감탄했다가
마지막엔 잔잔한 미소같은 위로를 덤으로 받게 되는 책이다.
아이들에게도 어렵지 않은 책이다.
자신의 감정을 단어로 표현하기 시작하는 유아들과 감정 표현에 미숙한 초등 저학년 어린이들에게도 좋을 듯하다.
요즘 '간식'과 '게임'을 초성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고 난 뒤가 어떨지 궁금해진다.
이제는 또 어떤 단어들을 표현하고 싶어질까.
때로는 장난스럽게, 때로는 무거운 단어들을 가볍게 이야기하고 싶어질 때,
언제든 아이들이 엄마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곁에 두고 한번씩 펼쳐보게 될 것 같은 책.
오늘도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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