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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남매의 책들/글책

나도 편식할 거야

by 케롤린 2021. 4. 26.

 

'앤'과 '삐삐'에 이어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게 된 책.

캐나다와 스웨덴에 각각 '앤'과 '삐삐'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정'이가 있다.

 

이 책은 나만큼이나 아이들도 너무 좋아해서 거짓말 보태 수십번은 읽어 우리집 잠자리 독서의 2년 연속 베스트셀러였다.

 

 

 

나도 편식할거야 ㅡ 유은실 동화, 설은영 그림, 사계절

 

 

 

 

 

뒷표지를 보면 제목이 왜 '나도 편식할 거야' 인지 짐작이 간다.

아무거나 잘 먹어서 사랑받는 주인공.

그런데 엄마가 맛있는 음식은 편식쟁이 오빠에게만 준다.

 

 

 

 

작가 소개에서 이미 팬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간결하고 솔직담백한 작가 소개라니.

'그래서 [나도 편식할 거야]를 완성한 다음, 무척 행복했어요' 라는 말이 너무 가슴 따뜻하게 느껴진다.

 

 

 

 

 

된장찌개를 밥에 비벼먹는 감성.

아, 이 문장이 첫 문장이라니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나.

 

'아무거나 잘 먹어서 사랑받는다.'

이 문장이 의미심장하단 건 재독, 삼독 하게되면 자연스레 느껴진다.

'잘 먹어서'가 아닌 '아무거나'에 초점을 맞추면 사랑받는 이유가 기꺼이 행복하지만은 않다.

 

 

 

 

'아무거나' 잘 먹는 정이에게는 찌개를, 편식쟁이 오빠에게는 장조림을 밀어주는 엄마다.

이렇게 섭섭할 수가. 나도 눈물이 핑 도는 느낌이다.

 

점심으로 나온 김치찌개. 그렇지, 김치찌개는 밥에 말아먹으면 최고지.

된장찌개는 밥에 비벼먹고, 김치찌는 국물 넉넉하게 해서 밥에 호로록 말아먹는 감성. 크.(작가님 사랑해요)

 

정이는 편식을 결심하지만, 결과적으론 실패한다.

그런데 그 실패하는 과정이 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내가 정이의 엄마였다면, 편식에 실패해서 펑펑 울며 대성통곡하는 정이를 끌어안고 웃다가 뽀뽀하고, 웃다가 안아주었을거다.

 

 

 

 

"으흐흐"

맛있는 장조림으로 밥을 두 그릇이나 뚝딱 해치운 정이에게 오늘은 참 즐거운 하루였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학교에서 일어난다.

 

'학교는 좋다. 밥이 맛있다. 유치원 때보다 식판이 크다. 더 많이 먹을 수 있다.' ('급식은 맛있어' 중. 본책 20쪽)

 

받아쓰기만 빼고 학교가 다 좋은 정이.

어제 받아쓰기 시험에서 세 개 틀려 속상하다. 

 

'속상한데 감자탕 냄새가 났다.'(본책 21쪽)

 

간결한 문장이 툭툭 이어지다가 주인공 정이의 의식의 흐름대로 내용이 펼쳐진다.

속상한데 감자탕 냄새라니!!

 

정이는 학교에서 급식시간이 제일 행복할 듯 하다.

급식도 참 맛깔나게 나오고 친구들도 정이를 좋아해서(정이 생각엔) 맛있는 반찬을 곧잘 정이에게 준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정이가 대성통곡할 사건이 일어난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얼마나 순진무구한지 이 부분을 읽다 슬며시 웃음이난다.

의도치 않게 친구에게 주어버린 상처,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뒤에 솔직하게 건네는 사과. 

아이들이 언제까지나 이렇게만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다시 집, 보약에 관한 사건이다.

쓴 나물도 맛있는 정이에게 보약이 맛이 없을리가.

편식쟁이 오빠가 또래 친구들보다 덩치가 작은 덕에 엄마는 근심을 한아름 안고 오빠 몫으로 보약을 한 재 지어준다.

정이는 먹지 말라고 한 탓에 그 맛이 궁금한 정이는 빈 보약 껍질을 가지고 거기에 물을 넣어 쪽 빨아 먹어 맛을 본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K.O. 

결국 엄마와 함께 약국으로 간 정이에게는 그날도 참 행복한 하루다.

 

 

우리집 아이들은 크게 편식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정이처럼 밥을 맛나게 먹지도 않는다.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만 있어도 밥을 두 그릇씩 먹고

학교 급식에서 감자탕이 나왔을 땐 센스있게 뼈다귀의 행방을 찾을 줄 아는, 

먹는 즐거움을 아는 정이가 어찌나 예뻤는지 책을 읽어주며 아이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정이 칭찬을 했더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직도 우리집 남매들은 밥 먹는 즐거움보단 간식먹는 즐거움이 크다.

조금 더 크면 간식 말고 밥도 충분히 맛있게 먹어 줄 날이 올까.

엄마가 요리를 잘 하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아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어쩌랴. 내가 원래 요리에 취미가 없는 것을.

 

대신에 엄마는 이런 맛깔난 책들을 더 많이 읽어주는 길을 택하기로 한다.

엄마의 체력이 다하더라도 정신력으로, 너희가 십대 청소년이 되어도 원하기만 한다면

엄마는 너희들의 머리맡에 앉아 가만가만한 목소리로 재미난 이야기들을 읽어주기로 약속한다.

맛있는 요리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책들로 사랑을 표현하기로 다짐한다.

 

 


작가의 말

 

정이만 했을 때, 나는 가끔 내 코를 때렸어요.

코피를 흘리고 싶어서요.

 

"아이고, 우리 은실이 코피 나네.

숙제 하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어라. 뭐 먹고 싶니?"

"장조림이요."

"그래 몸이 약해서 코피를 흘리는구나.

 장조림 잔뜩 만들어서 너만 줄게."

 

엄마랑 이런 얘기 나누는 상상을 했지요.

하지만 아무리 코를 때리고, 깊이 후벼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어요.

 

'왜 이렇게 아무거나 잘 먹고 튼튼하지?'

나는 가끔 코피를 흘리는 친구가 부러웠어요.

 

하지만 서른여덟 살이 된 지금은

아무거나 잘 먹는 내가 좋아요.

코는 가끔 후비지만, 절대 깊이 후비지 않아요.

몸과 마음이 코끼리처럼 튼튼했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우리 엄마가

"나도 편식할 거야"를 읽고

장조림을 잔뜩 만들어 줬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사랑하는 엄마!

장조림 또 해주세요.

그리고 꼭 언니보다 많이 주세요.

 

2011년 2월

유 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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