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먹는 여우
책을 너무 좋아해서 책에 소금과 후추를 뿌려 먹는 여우아저씨의 이야기.
자신만의 맛있게 책 먹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매력적이다.
책을 좋아해도 아주 많이 좋아하는 여우 아저씨.
더이상 먹을 책이 없고 아저씨는 너무 배가 고팠다. 그러던 그가 눈여겨보았던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도서관에서 몰래 책을 훔쳐 먹으며 행복하던 여우 아저씨.
꼬리가 너무 길었다. 결국 책을 훔쳐먹은 사실이 들통나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감옥에 갇혀있다는 사실보다는 더 이상 책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슬픈 여우 아저씨.
어느 날 그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종이와 연필을 얻어 밤낮없이 글을 써 책을 만들어 자신이 먹는 것.
여우 아저씨가 쓴 글을 보게 된 교도관은 먹어치우기엔 너무 아깝다며
직접 출판사를 차리고 여우 아저씨의 책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스타 작가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던 날 복합적인 감정의 오묘한 기분이 들었단걸 기억한다.
다사다난한 일이 많았던 주인공지만 너무나 행복해보여서 부러웠던것 같기도 하다.
[더 좋은 곳으로 가자]의 정문정 작가가 말했었다.
어린시절엔 어른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주변에 없었어서 책을 읽었던것 같다고. 누군가에게 조언과 가르침을 얻을만한 상황이 아니었던거다.
나 역시 그랬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은 너무 바빴고 자녀교육은 방법을 모르는 분들이셨다. 나도 정문정 작가처럼 일상에서 새로움과 배울만한것이 없어서 책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재미있는 책은 열번도 넘게 읽었었다.
그러다 책에서 손을 떼기 시작한게 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인가. 집에 다양한 책들을 들일 형편도 안되었었고 작은 시골마을이라 도서관은 버스를 타고 한참 나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그래도 내가 좀 더 부지런했었다면 도서관에라도 열심히 다녔으면 됐었으련만, 그런 조언을 해준 인생 선배가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책을 좋아하지만 계속 좋아할 수 없었어서 교과서 아닌 책에서는 손을 떼고 시간을 허비했다.
대학생 시절, 시간이 많을때라도 좀 열심히 읽어둘걸 하는 후회가 직장을 다니고서야 시작됐다.
주인공 여우 아저씨는 부족하지만 않다면 하루종일 책만 읽었을 것이다.
인풋이 많으니 아웃풋도 술술 나온다. 감옥에 갇혀있던 그가 종이와 연필을 얻어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야말로 일필휘지다.
나는 무언가 아웃풋을 내고 싶어도 인풋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여기는데.
지금은 열심히 읽고 싶어도 도저히 시간과 체력이 뒷받침해 주질 않아서 서글프다.
지난주부터 둘째 아이의 간헐적 가정보육덕에 내 독서루틴이 깨진지도 꽤 되었다.
소금과 후추까지 쳐서 이리저리 맛을 보며 맛있게 책을 먹는 주인공인데, 나는 그런 소금과 후추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장르불문하고 집에 쌓아둔 많은 책들을 한권씩 읽을 수 있는 시간만 주어져도 좋겠다.
오늘도 나의 하루가 허무하게 지나간 것 같아 서글픈 하루다.
책 먹는 여우가 너무나도 부러워서 더 서글프다.
나도 책 참 좋아하는데. 나도 책 맛있게 읽을 줄 아는데.
나도 책 읽고 배부른 느낌이 뭔지 오랜만에 좀 느껴보고 싶다.
내일은 부디. 내일 모레도 또 그 다음날도 부디.
더 부지런히 한장이라도 더 알차고 맛있게 책을 음미할 수 있는 날이 될 수 있기를.